부활의 증인으로 살라 | 이성범 목사 | 2020-04-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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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고린도전서15:3-4절 개역개정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세상에는 사람의 힘이나 지혜 또는 보통의 지식이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신기하고 묘한 일과 현상이 많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을 신비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사실도 아니고 세상에는 없는 것이다‘라고 자기 관심 밖으로 밀어버립니다. 아예 모르니까 생각하지 않겠다는 태도입니다. 반면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내가 모르고 이해하지 못할 뿐이지 사실이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내가 알고 모른다는 것과 이것이 사실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별도의 문제입니다. 내가 안다고 있고 내가 모른다고 없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내가 모른다고 해도, 내가 없다고 해도 있는 것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실 여부와 내 이해와 지식은 다르게 생각해야 합니다. 출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우리의 일생 자체가 신비입니다. 신비를 우리가 다 이해할 수는 없어도 엄연히 존재합니다. 알거나 모르거나, 믿거나 말거나 죽음이 존재하듯 부활 또한 확실한 사건입니다. 부활 사건을 기적으로만 이해하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창조의 역사가 자연스러운 일인 것처럼 부활은 하나님 앞에 조금도 신비로운 것이 아닙니다. 사람에게나 이적으로 여겨지고 깜짝 놀랄 일일 뿐이지, 하나님께는 다만 창조의 역사요 생명의 역사입니다. 부활은 우리의 설명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사실적 증거이고, 생명의 변화일 뿐입니다. 없던 생명이 태어났고, 그 생명이 성장합니다. 또한, 그 생명이 죽습니다. 그리고 다음 단계로 '부활'이 우리 앞에 있는 것입니다. 부활 사건에 대한 신앙은 없고, 부활 신앙에 대한 믿음만이 팽배한 데 문제가 있습니다. 부활을 추상적 진리로, 논리로, 교리로, 철학으로만 생각하고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생명이 사실이듯, 죽음이 사실이듯, 부활 또한 사실입니다. 부활은 다음 단계로 향하는 사건입니다. 우리가 알거나 모르거나 우리의 준비와 상관없이 죽어야 하는 것처럼 부활도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엄연한 변화의 한 단계일 뿐입니다. 그 역사적 사실과 그 계시적 사건 안에서 모든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사망이 얼마나 무서운 권세입니까? 죽음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모든 것을 소멸시킵니다. 많이 배웠더라도 죽음으로 말미암아 그 배움은 다 쓸데없는 것이 됩니다. 많이 벌어놓았어도 죽음과 함께 그것들은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이 됩니다. 명성을 높이 쌓았다 할지라도 죽음과 함께 아무것도 아닌 게 됩니다. 모든 가치관과 도덕관이 죽음에 걸려 있습니다. 죽음을 외면하기에 사람들은 축재하고 부정을 저지르며 어리석은 행동을 합니다. 죽음을 바로 알았더라면 그 같은 행동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죽음은 모든 가치관의 근본이고, 삶의 모든 문제가 죽음에 걸려 있습니다. 나 하나 죽으면 그만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도, 어차피 죽을 것이니 마음대로 살아보자는 사람의 생각도 죽음을 바로 알지 못하는데 연유합니다. 이렇듯 사망 권세는 엄청난 위력으로 우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할 안에서 사망 권세와 율법과 심판을 다 초월할 수 있었습니다. 모태에 있는 생명은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습니다. 태아는 더없이 평안하고 좋기만 한 그 속에서 자라납니다. 그 모태를 벗어나 세상에 태어날 때, 우리는 그것을 출생이라 부르지만, 출생을 모태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죽음입니다. 그 좋은 곳을 버리는 것이고 탯줄을 끊어버리는 것입니다. 곧 죽음입니다. 출생했다고 기뻐해 주지만 실은 죽음을 거쳐 넓은 세상에 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는 세상이라는 태 속에 있습니다. 언제가 세상의 태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명으로 출발하게 될 때, 세상은 이것을 죽음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부활 안에서 죽음을 이해하고 생명을 이해하게 될 때, 세계관은 완전히 달라지는 것입니다. 부활 안에서 세상을 보았기 때문에 초대교회 사람들은 원수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부활 앞에는 거칠 것이 없습니다. 부활 신앙으로 사는 자는 부활의 소망으로 충만하기에 모든 것을 부활 안에서 해석하고 다 소화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곧 나도 부활할 것입니다. 부활은 자연적 변화나 한낱 자연현상이 아니라 재창조의 역사요, 변화케 하시는 역사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시고 하나님께서 살리셨듯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을 친히 살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은 곧 우리의 부활입니다. 본문은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돼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라고 결론 짓고 있습니다. 부활 신앙을 가진 자의 모든 일은 절대 헛되지 않습니다. 바로 여기에 진정한 삶의 의미가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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