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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낫고자 하느냐 이성범 목사 2022-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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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요한복음5:6절 개역개정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제공: 대한성서공회

본문을 보면, 예루살렘 양 문 곁 베데스다 연못 주변에 있는 다섯 행각에 기적을 바라는 많은 병자가 모여 있습니다. 이 연못은 간헐천으로 때때로 물이 솟아오를 때 수면이 움직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이것을 천사들에 의해 행해지는 현상으로 이해하였고, 그때 제일 먼저 연못에 들어가는 가는 자는 병을 고침을 받을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3절은 그 안에 많은 병자, 시각장애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많은 병자 중에 유독, 세 종류의 환자를 소개합니다. 이 세종류의 환자가 갖는 공통분모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시각장애인은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그 연못에 먼저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다리 저는 사람도 다리가 불편하니까 혼자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또한, 혈기 마른 자(중풍 병자)는 머리로는 가고 싶은데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마음은 간절한데 손발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 세 종류의 환자는 전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라고 한 병자를 소개하면서 그를 주목하게 합니다. 병을 앓고 있는지가 38년이나 되었습니다. 병은 위증했지만,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던 터라 긴 세월을 그렇게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왜 수많은 병자 중 38년 된 병자일까요? 성경은 왜 38년의 연수를 굳이 밝히고 있는 것일까요? 38년이라는 이 연수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방황하던 시간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삼십팔 년 동안이라 이때에는 그 시대의 모든 군인들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진영중에서 다 멸망하나니 (2:14)

 

가데스 바네아를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38년이 걸렸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38년은 불순종의 세월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앞세워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해방 후 가데스 바네아까지 인도했습니다. 그곳에서 모세는 가나안 땅의 정황을 알기 위해 각 지파에서 한 명씩을 뽑아 열두 정탐꾼을 보냅니다. 그런데 그 땅을 탐지하고 돌아온 정탐꾼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10명이 부정적 보고를 합니다. “괜히 따라 나왔습니다. 그 땅에는 이미 거대한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메뚜기 같습니다.”라고 말하니 백성들이 밤새 대성통곡하고 나서 모세를 원망합니다. 그때부터 방황한 세월이 38년이었습니다.

 

38년은 불순종으로 방황한 시간이고,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지 않았던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보다 자기 경험과 의를 드러내며 산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인생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지 않은 낭비의 시간이었습니다. 38년 된 병자는 그런 이스라엘의 모습을 그려냅니다.

 

주님은 38년 된 병자에게 주목하십니다.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6) 그 모든 것을 보시고 아시는 그분이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셨습니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인간에게 삶은 10%의 사실과 90%의 태도로 결정된다고 말합니다, 사건보다 사건에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형제들에 의해 노예로 팔린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이 노예로 팔려 갑니다. 우리 눈에는 요셉의 인생이 끝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도 요셉은 믿음으로 반응합니다. 어느 순간도 원망하지 않고 감사합니다. 결국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 가나안에 흉년이 들어 자기를 종으로 팔았던 형들이 식량을 구하기 위해 애굽을 찾아옵니다. 이런 원수가 어디 있습니까? 그 순간 보통사람 같으면 내가 형들 때문에 고생한 세월이 얼마인 줄 아느냐?”면서 불타오르는 복수심으로 보복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에 보내셨나이다.”라고 반응합니다. 자기를 종으로 판 형들을 원수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요셉의 태도와 반응이 그의 인생을 위대하게 만듭니다. 중요한 것은 사실이 아니라 사실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아무리 큰 어려움이 있더라도 현실에 매여있는 사람이 아니라 믿음으로 삶을 뒤바꾸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38년 된 병자가 절망의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반응해야 했을까요? 38년 된 병자에게 주님이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시는 것을 곁에서 들었더라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까요? ‘예수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저 사람에게 지금 낫는 것보다 더 절실한 필요가 있겠습니까?’라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까? 하지만, 38년을 기다렸습니다. 그렇다고 지금도 그를 도와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병자는 낫고자 하는 소망을 이미 포기하지 않았을까요? 어쩌면 그 자리는 희망의 자리가 아니라 그저 시간이나 때우면서 생존을 이어가는 체념의 자리는 아니었을까요? 그 자리를 지나치는 구경꾼들이 동정의 눈빛으로 던져 주는 몇 푼의 동전이 그에게는 더 희망적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그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소망을 다시 깨우는 일일 것입니다. ‘네게 낫고자 하느냐?’ 물으실 때 낫고자 하는 열망의 깨어남이 필요한 것입니다.

 

38년 된 병자가 예수님 만났을 때 그가 품고 있던 희망이 무엇이었습니까?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던지 낫게 됨 이러라.”(4) 여기서 강조되는 단어가 무엇입니까? “먼저입니다. 38년 된 병자의 간절한 희망은 연못에 먼저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는 주님의 물음에 나를 못에 넣어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내려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7)라는 그의 대답은 이를 더 확실하게 뒷받침합니다.

 

그렇다면 이 순간에 찾아오신 예수님에게 그가 부탁할 수 있었던 도움은 무엇이었겠습니까? 옆에 계시다가 저 연못의 물이 움직일 때 나를 제일 먼저 저 못에 들어가도록 도와 달라는 것 아니었겠습니까? 그것이 그가 붙들고 있었던 문제의 해법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 제치고, 내가 먼저 들어가 치료받고, 건강도 회복하고, 특혜도 누리고, 출세도 하고, ’

 

하지만 예수님은 이런 그의 해법에는 전혀 관심조차 없으셨습니다. 로마서 122절에서 바울 사도는 구원받은 자들에게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권면합니다. 우리가 변화를 갈망한다면, 자신이 가진 익숙한 해법부터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아니, 우리의 해법을 내려놓을 때 그분의 치유가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이 기적의 연못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 연못에 눈길 한번 주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이 병자를 주목하여 말씀만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8) 

 

38년 병자는 주님의 말씀 앞에서 이제 더는 환경을 탓하거나,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합니다. 성경은 순종 이후에 그의 삶에 일어난 뚜렷한 변화를 보여줍니다.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9)갔고, 또한, 고침을 받은 후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15)라고 증언하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그의 인생의 해답은 처음부터 연못의 물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오늘도 말씀은 인생의 유일한 해답입니다. 말씀으로로 다시 돌아간다면 다시 새로운 희망을 찾을 수 있지만, 돌아가지 못한다면 베데스다 행각에서 물가의 움직임만을 기다리는 방황을 계속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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