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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하며, 사랑하며, 감사하며 이성범목사 2017-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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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골로새서3:12-17절 개역한글

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13.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존재는 인간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존재 자체에 대해 스스로 반성의 사유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아가는 것은 일생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이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지만, 피할 수 없는 과제입니다. 인간다움을 찾고자 하는 지금까지의 인류의 성찰을 요약하면, 세 가지 질문이 나타납니다. 첫째는 나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진실 된 참 자아를 찾아가는 고민과 성찰입니다. 둘째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하는 질문입니다. 이웃과 더불어 도덕적이고 선한 삶을 살고자 하는 고민과 성찰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하는 질문으로 주어진 생을 아름답게 마치고자 하는 고민과 성찰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은 하나님은 창조주요, 인간은 피조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있고 그다음에 하나님이 있다는 자기중심의 생각과 하나님이 계시고 내가 있다는 하나님 중심의 생각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거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의 차이에 따라 삶의 의미와 모습도 전혀 다르게 전개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 안에 내가 있다"라고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존재를 발견하고 십자가 안에서 자기 생의 의미를 찾은 사람입니다. 자기의 선과의, 나아가서는 자기의 뜻과 존재까지도 그리스도 안에 있기에,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1:21)라고 고백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본질은 주어진 것이며, 오로지 그리스도 피의 값으로 존재합니다. 문제는 그리스도 안에 주어진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뿐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세 가지의 호칭이 있습니다. "선택받은 자", "거룩한 자", 그리고 "사랑받고 있는 자"입니다. 이는 곧 그리스도인의 뿌리요, 존재의 근본이며, 신분증입니다. "선택받은 자"라는 호칭은 하나님의 주도적인 구원의 역사를 의미하는 것으로,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가 나를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내가 있기 전에 그가 계셨고, 주도적으로 인도하셔서 오늘 내가 여기 있다는 고백입니다. 또 하나의 호칭은 "거룩한 자." , ‘성도입니다. 거룩히 구별된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호칭이지만, 현대의 교회에서는 이 단어가 점점 사라져갑니다. 왜냐하면,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별반 다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오늘을 사는 동안에도 죄와 세상, 옛사람과 세속적 가치로부터 구별되어야 합니다. 성도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은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합니다. (1:1). 권모술수와 더러운 말들이 오가는 그 자리에 앉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부끄러워 앉아 있을 수도 없습니다. 같이 속이고 같이 모함하며, 같이 쑥덕거린다면 무슨 성도이겠습니까? 성도란 깨끗하게 하나님 앞에 구별된 사람입니다. 마지막으로 "사랑받는 자"라는 호칭은 실존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과거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옛날이야기로서의 사랑이라면 이는 지식이요, 기억이요, 하나의 추억에 불과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먼 미래의 사랑 이야기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는 하나의 이데올로기(ideology), 신념에 불과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받는 사랑은 실존적 사랑입니다. 오늘 이곳에서 사랑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그 사랑을 오늘 확증하고, 약속된 미래를 오늘 벅찬 감격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선택받은 자, 구별된 거룩한 자, 그리고 실존적 사랑 안에 있는 자, 여기에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옷 입어라." 말씀합니다. 이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합니다. 선택받았으니 겸손하고 온유하라거룩한 백성이니 하나님 편에서 인내하라. 사랑받고 있으니 사랑하라. 용서받았으니 용서하되 그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참으로 귀한 말씀입니다. 이제는 용서 못 할 죄도 없고, 사랑 못 할 이유도 없습니다. 선택받은 자에게는 오직 감사와 찬송이 있을 뿐입니다. 원망도, 미움도, 원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절망도 없습니다. 이제는 오직 용서하며, 사랑하며, 감사하며, 찬양으로 모든 시험과 죄악을 이기며 날마다 승리의 길을 갈 뿐입니다. 이 은총, 이 기쁨, 이 감격이 늘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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