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 이성범 목사 | 2017-04-0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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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고린도전서13:1-7절 개역한글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스펙과 조건을 우선으로 배우자를 골랐는데, 그 배우자가 직장도 그만두고 벌이도 없어진다면 그때도 여전히 그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제법 공부 좀 하던 자녀가 점점 성적이 떨어져 의대는커녕 서울에 있는 대학도 가기 힘들어진다면 여전히 그 아이가 자랑스러울까요?” 인간과 인간관계 위에 돈이 존재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돈을 비판하고 자본주의를 비난합니다. 그러나 비판의 끝에는 그들처럼 되고 싶어 하는 심리가 짙게 깔렸습니다. 30만 원 가진 사람과 1억을 가진 사람이 계획하는 여행은 다를 것입니다. 돈의 액수만큼 꿈을 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젊은이는 취업을 위해 목숨 걸 만큼 노력합니다. 그래야 돈을 벌 수 있으니까요? 돈이 매개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세상, 이것이 오늘 우리가 사는 사회입니다. 그래서 스펙을 쌓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낙오되면 자살이라는 극단의 선택도 서슴지 않습니다.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유괴는 우리 사회가 아이보다 돈을 더 소중하게 여길 때 발생하는 범죄입니다. 부모에게는 억만금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자식입니다. 유괴범이 5억 달라면 5억 주고 10억 달라면 10억을 주고서라도 자식을 지키고 싶어 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하지만 유괴범이 협박 전화했을 때 “고마워요. 잘 키워주세요.” 한마디 한다면 범죄는 무의미해질 것입니다. 유괴의 논리는 한 아이가 가능한 많은 돈으로 환산될 때 가능한 범죄입니다. 유산에 눈이 멀어 부모와 형제도 쉽게 죽이는 세상에 분노하면서 우리 또한 돈 때문에 누군가를 파괴할 수밖에 없는 조건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시인은 오늘의 사회를 집어등과 오징어에 비유합니다. 집어등은 야간에 오징어나 정어리를 잡을 때 불빛을 따라 몰려드는 물고기의 성질을 이용해 켜두는 등을 말합니다. 백화점이나 인터넷 쇼핑몰에 명품이라는 집어등을 켜두면 저 옷, 저 가방, 저 신발을 사야 더 멋있을 것 같고, 저 차를 타야 더 모양새가 날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이것저것 무엇엔가 홀린 듯 정신없이 사고 보면 치수도 안 맞고 영 어울리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환급을 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치면 상품을 구매하기 전과는 반대로 이제는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오징어 신세가 됩니다. 사람이 돈보다 위에 있을 때 사랑도 할 수 있습니다. 돈 벌지 못하는 아버지와 남편은 가족으로 더는 사랑받지 못합니다. 성적 떨어진 아이도 사랑받지 못합니다. 돈 못 벌어 힘들고, 성적 떨어져 좌절할 때일수록 더 사랑이 필요하지만, 인간과 인간관계 위에 돈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본문은 대단히 중요한 명제를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준은 오직 하나, 사랑입니다. 내가 아무리 큰일을 했다 하더라도,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었다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으며, 실패와 성공의 기준은 무엇이었습니까? 사랑해서 태어났고, 사랑과 함께 살다가 마침내는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 안기는 것이 인간입니다. 개를 두고 쓰다듬으면서 "나는 너를 미워한다."고 부드럽게 말하면 개는 좋아라고 꼬리를 칩니다. 하지만 개를 향해서 "나는 너를 사랑한다."며 큰소리를 지르면 물어 버립니다. 사랑은 언어의 문제보다 마음의 문제입니다. 세상에 사랑처럼 흔한 말도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행사, 모든 행동이 과연 사랑이었을까요? 요한계시록 2장에는 에베소 교회를 책망하시는 무서운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는 지식도, 비판력도 있으며, 진실과 성실함, 그리고 인내와 거룩함도 가지고 있다. 완벽하리만큼 종교적인 성결을 갖추었다. 하지만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회개하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말씀하십니다. 다 가졌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충고든, 구제든, 심지어 봉사하더라도 거기에 사랑이 빠지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다시 한번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범사에 사랑이 있었는가. 마음에 사랑이 있었으며, 손길과 눈빛에 사랑이 있었느냐고. 만일 그러지를 못했다면 그 모든 일, 그 모든 수고는 헛것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피곤하고 지치는 것입니까? 왜 이렇게 조그만 일에도 짜증 내며,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까? 그 모든 이유는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도, 억울한 말을 들어서도 아닙니다. 문제는 사랑하는 마음이 어느 사이에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낙심하는 이유도, 절망하는 이유도, 사랑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온유해야 할 줄도 알고, 겸손해야 할 것도 배웠습니다. 하지만 온유해지지도 않고 겸손하지도 못합니다. 사랑이 없으므로 온유하고 겸손한 것을 마음대로 못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자 앞에서는 온유해지고 겸손해지기 마련입니다.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런고로 이제 우리의 사랑을 점검하고, 어디에서 잘못되었는지를 생각하며, 원점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경제, 인기, 지위, 명예가 아니라 범사에 사랑이 있었느냐고 물어야 하겠습니다. 어떤 경우도 사랑 없는 행위는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으며, 사랑으로 행했다면 혹 실수가 있고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그 행위는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얻게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잃고라도 사랑을 얻었으면 실패한 인생은 아닙니다. 스데반은 세상을 떠날 때 돌무더기 속에서 원수를 사랑하며, 천사의 얼굴로 죽어갑니다. 사랑했기에 그는 성공한 것입니다. 우리의 범사, 모든 행위 속에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사랑이 있었는지 자문하고 깊이 반성하며 그 사랑 안에서 다시 거룩한 교회로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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