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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잊어버린 품꾼들의 불행 이성범 목사 2019-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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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태복음20:1-7절 개역개정

1.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2.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3. 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4.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그들이 가고

5. 제육시와 제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6. 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7.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마태복음 20장은 포도원 주인의 이야기입니다. 본문은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주인과 같으니라고 시작합니다. 천국은 집주인과 같다고 말합니다. 집주인과 같은 마음이면 가정도, 직장도, 교회도 천국으로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포도를 수확하는 시기가 되면 많은 일꾼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주인은 이른 아침에 좋은 품꾼들은 얻기 위해 인력시장에 나갑니다. 그런데 이 주인은 아침 7시뿐 아니라, 9, 11, 오후 1, 3, 심지어 오후 5시에도 나갑니다. 그때까지도 일감을 구하지 못한 품꾼들이 있으면 내 포도원에 와서 일하라고 초청합니다. 다른 포도원 주인들의 관심은 건강한 품꾼을 싼값에 사서 최대한 많은 열매를 거두어들이는데 있지만, 이 주인은 장터에서 일감을 찾지 못해 놀고 있는 품꾼들에게 마음이 있습니다. 이 품꾼들은 기술도 없고 배우지도 못해 제대로 된 직장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도 삶이 있고 먹여 살려야 할 가족이 있습니다. 아무도 그들을 생각해 주지 않지만, 집주인은 그런 품꾼들을 선택해 주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집주인이 약속한 금액, 바로한 데나리온입니다. 이 액수는 기술과 경쟁력을 갖춘 정규직 노동자들이 받는 하루 임금입니다. 품꾼이 받을 수 있는 돈이 아닙니다. 기술과 자격을 인정받은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누리는데 필요한 금액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한 데나리온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데나리온은 그들의 삶이요 생명입니다. 하지만 품꾼들은 이 한 데나리온조차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은혜로운 주인은 당신들도 한 데나리온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인정해 준 것입니다.

 

선택받은 품꾼들이 포도원에서 어떻게 일했을까요? 포도를 수확하는 일은 분명 힘든 노동이지만, 즐겁게 일했을 것입니다. 마음에는 기쁨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자격 없는 나에게 한 데나리온이나 주었다는 은혜 때문에 마음에 천국이 임했을 것입니다. 이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을 때 주인은 또 장터에 나가서 품꾼들을 데리고 옵니다. 주인의 관심은 남보다 연약하고 부족해서 선택받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9시보다는 11시까지 남은 사람이, 11시보다는 1시까지 남은 사람들에게 관심이 더 갑니다. 그러니 오후 5시까지 남겨진 자들을 찾아서 포도원으로 들여보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후 5시에 들어 온 품꾼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그들에게는 주인이 얼마를 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습니다. 사실 돈 받은 것보다 그냥 누군가가 나를 써 준다는 것이,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 일하게 되었다는 것이, 오늘 집에 돌아갈 때 포도 한 송이라도 들고 갈 수 있다는 기대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했을 것입니다.

 

드디어 일과를 마치는 6시 종이 울리고 임금을 받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누가 먼저 임금을 받았습니까? 가장 나중에 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한 데나리온을 받습니다. 세상표현으로는 이것은 “‘대박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1시간도 일하지 않았습니다. 자격도 없을뿐더러, 사실 무엇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민망할 따름인데도 한 데나리온을 받았습니다. 이 품꾼은 하루지만 감당할 수 없는 은혜로 가장 노릇을 하며 저녁에 집에 가서 가정을 천국으로 만들었을 것입니다.

 

이제 3시에 온 사람이 임금을 받을 차례입니다. 3, 1, 11, 9시에 온 사람들이 지금 열심히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계산입니다. 5시에 온 사람이 한 시간도 일하지 않고 한 데나리온 받았다면 세 시간, 다섯 시간, 여덟 시간을 일한 우리에게는 얼마를 줄까하는 이런 계산입니다.  비교하고 계산하다 보니 점점 마음에 크게 다가오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한 일입니다. 그냥 일한 것이 아니라 햇볕이 내리쬐는 데서 온종일 견디었습니다. 자기의 수고가 갑자기 커 보이기 시작하고, 거기에 대한 보상과 대가가 있어야 정의로운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포도원 주인이 모두에게 약속한 기준은 한 데나리온입니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넘치는 은혜입니다. 그 은혜가 기준이 될 때 품꾼들은 포도원에서 일했지만 천국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사실 11, 1, 3시에 온 품꾼들은 한 데나리온 받을 것으로 기대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11시나 13시에 온 사람들부터 한 데나리온씩을 주었다면 오늘은 정말 대박이었다고 기뻐 뛰며 좋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은혜 가득한 한 데나리온이 갑자기 불평과 원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품꾼들은 그 이유를 정확히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 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12)라고 말합니다. 왜 더 일한 만큼 보상하지 않으냐는 것입니다. 3시에 온 사람은 자신이 세 시간 일했다고 데나리온 3개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5시에 온 사람보다는 많이 받을 것으로 기대했을 것입니다. 기준이 바뀐 것입니다. 한 데나리온이 기준이었을 때는 택함 받은 것만 해도, 쓰임 받는 것만 해도, 일한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습니다. 기준이 내가 받은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비교하다 보니 기준점이 내가 한 수고와 노력으로 바뀝니다. 이제 그들의 마음은 더는 은혜가 지배하지 않습니다. 복잡한 수식만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계산대로 보상되지 않을 때 마음은 원망과 불평으로 가득 찹니다.

 

은혜의 법이 지배할 때는 천국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공정한 대가와 상응하는 보상만을 바랄뿐입니다. 은혜의 법에서 떠나면 내가 받은 것보다 언제나 내가 수고하고, 일한 것이 언제나 더 크게 느껴집니다. 나의 노력과 수고에 대한 정당한 대가가 지급되지 않았다고 생각되면 절대 참을 수 없게 됩니다.부부, 부모형제간에도 갈등이 닐어나고 서로서로가 지옥으로 만듭니다.

 

만약 품꾼들이 한 데나리온, 받은 은혜에 집중했다면, 빵과 풍성한 먹을거리를 사서 가서 가정을 천국으로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집에 가지 않고 노동에 상응하는 대가를 더 달라고 떼를 쓰고 급기야는 주인에게 데모까지 합니다. 참고 있던 주인이 이제 네가 받은 것이나 가지고 가라말합니다. 아마 그들은 원망과 울분으로 집에 가는 길에 술로 화를 풀면서 받은 데나리온마저 탕진했을 것입니다. 주인이 품꾼에게 내리는 판결은 명확합니다. 이 사람들에게 나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모든 사람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어 받은 그 생명을 누리는 것이 주인의 뜻입니다. 연약하고 부족하기에 나중에 온 사람에게 더 많이 주어서 같이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게 하는 것이 주인의 정의요 마음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불행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 이야기보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이야기가 마음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받은 은혜보다 나의 수고와 행위를 자랑하고픈 마음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잊어버리면 천국은 한순간에 지옥으로 바뀝니다. 은혜의 기준이 바로서야 천국 삶을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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