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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의 말씀이 있는 교회 이성범 목사 2019-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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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요한복음6:66-71절 개역개정

66.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67.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69.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7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71.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그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요한복음 6장은 예수님께서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인 놀라운 기적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상하게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66) 라고 결론이 납니다. 예수님이 놀라운 이적으로 많은 사람을 모였지만, 마지막은 소수의 제자 몇 사람만 남고 다 떠나버리는 왜 이런 특이한 현상이 나타난 것일까요?

 

먼저 교회는 사람의 숫자가 아니라 복음 선포로 정당성을 증거해야 합니다. 사람의 수가 진리를 대신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사람들이 모였습니까? 표적 때문이었습니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일러라.”(6:2) 또한, 욕구가 충족되었기 때문입니다.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떡을 먹고 배부를 까닭이로다.”(6:26) 오늘도 각양의 질병을 앓는 사람들이 많으므로 이적을 보이거나, 욕구에 들어맞는 번영의 복음을 선포하면 사람이 모여들 것입니다. 하지만 그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일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해지고, 그의 권능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표적에만 머물면 진리에서 벗어납니다. 오병이어로 배불리 먹게 되고, 병자를 고치니까 사람들이 더 몰려왔지만, 예수님을 자신의 욕구나 필요를 채워줄 대상으로 여겼을 뿐, 말씀을 채워 줄 대상으로 찾았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피와 나의 몸을 먹지 아니하고는 생명을 얻을 수 없다라는 사실을 강조하시지만표적을 바라보고 모인 사람들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러 있지 않고 말씀 신앙으로 나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교회가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무너지는 이유는 표적에만 머물고 말씀으로 나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교양과 윤리의 신앙적 차원에 머물지 말고 성장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착하게 살아야 하고, 살인하지 말아야 하고, 가정도 잘 돌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보편적 가치와 윤리는 기독교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종교의 가르침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이것을 넘어 십자가의 길로 걸어가야 합니다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배불리 먹을 때는 많은 무리가 따랐으나, 예수님이 십자가를 가르치자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66) 하면서 떠나갔습니다. 어렵다는 말은 틀렸다는 것도, 이해를 못 하겠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나는 싫다”, “그 말씀에 동의할 수 없다.”라는 표현입니다. “내가 여기 왜 온 줄 아느냐? 오기만 하면 병을 고쳐 주고, 먹을 것 주고, 복을 준다고 해서 왔는데, 지금 그게 무슨 엉뚱한 소리냐하면서 다 떠나갔습니다.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66)

 

참된 복음과 십자가를 증거 하면 사람들은 그 말씀에 저항감을 느끼고 흩어집니다. 그렇지만 교회는 그것을 두려워해서도, 사람에게 흔들리거나, 환경에 좌우되지도 말아야 합니다. 사람이나 환경 때문에 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초대교회는 큰 핍박 때문에 더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환경과 상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말씀과 핍박으로 순수한 하나님의 백성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하니라”(16:5)

 

63절은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 말씀합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지 인간의 노력이 아닙니다. 모든 육체의 노력은 무익할 뿐만이 아니라 죄인의 중생과 상관이 없습니다. 거듭나게 하는 것은 성령의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니고데모 말씀하셨듯이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3:5-6) 지식으로 사람이 변화되고, 감동적인 호소로 사람이 변화되리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입니다. 또한, 눈길을 끄는 실내장식이나, 귀를 사로잡는 음악도 우리를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오직 성령의 역사만이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그러므로 모든 시대에 있어서 인간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 말씀이며, 교회가 해야 할 가장 큰 책임은 이 말씀을 신실하게 전하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사명은 없습니다. 교회는 말씀 전하는 일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내 말과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의 사람이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2:4) 말씀합니다.

 

흩어지는 군중을 보면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이에 베드로가 중요한 고백을 합니다. “주님, 영생의 말씀이 여기 있는데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군중들은 놀라운 이적에 매혹되었지만, 말씀은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반면에 제자들은 이적보다 말씀에 매혹되었습니다. 우리가 참 제자요 그리스도인이라면 병 고치는 것에 마음을 빼앗길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신앙의 기반을 두어야 합니다.

 

교회는 영생의 말씀을 가진 교회이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오늘날 교인 수가 줄어들고 교회가 위기를 맞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속지 말아야 할 것은 위기는 성도 수의 감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데 있습니다. 말씀을 떠나면 우상이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말씀 앞에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신앙생활은 우리의 의지와 감정이 말씀과 끊임없이 부딪치는 과정입니다. 이 부딪침을 통해 육신의 생각을 죽이고 말씀 앞에 굴복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이 땅을 살리는 길이 말씀을 증거 하는 일임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십자가를 들고 세상에 나아가 영혼을 살리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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