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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은 높게! 자세는 낮게! 이성범 목사 2020-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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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가복음9:38-40절 개역개정

38. 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40.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따라오는 시험이 있습니다. 열심 없는 사람에게 있는 문제가 아니라 몸과 마음을 바쳐 주님을 좇는 사람들에게만 다가오는 시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반드시 주의하여야 할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지배욕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처음에는 봉사하는 마음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봉사하다 보면 나 혼자 하는 일이 아니기에 권위를 행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 부지불식간에 지배욕에 사로잡혀 봉사의 정신은 흐지부지되고 지배자로 군림하려는 자세만 남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지배욕을 다스려야 합니다.

 

두 번째는 경쟁심입니다. 이 시험에 빠짐으로 열심 있는 사람들끼리 부딪칩니다. 20장은 경쟁심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노상에서 제자들은 누가 더 크냐로 논쟁합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세베대의 아들로 형제간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와 함께 이들 형제를 데리고 변화 산에 올라가신 것을 보면 다른 제자들보다 더 가까이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때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20:20-1) 베드로가 수제자인데, 그를 빼놓고 두 아들만 좌우편에 앉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아주 치열한 자리다툼입니다. 경쟁심은 서로를 질투하고 시기하게 합니다. 그러다가 아주 큰 시험에 빠집니다, 경쟁심을 극복하지 못하였다면 예수님의 참 제자일 수 없습니다.

 

셋째는 독점욕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독점하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38절은 보면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쫓는 것을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요한이 직접 아뢰는 말씀이지만, 요한만이 그러하겠습니까? 봉사를 놓고도 독점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 혼자만 하겠다는 것, 나 아니면 안 된다고 교만한 마음은 예수님의 제자라면 반드시 삼가야 할 것입니다.

 

넷째는 불화입니다. 협력하고 화목해야 하는데, 대체로 열심인 사람들이 분열하기 쉽습니다. 열심끼리 부딪쳐서 하나가 되고 협력해야 할 사람들 사이에 분열이 생깁니다. 분열은 예사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경계해야 합니다.

 

본문에 등장한 요한은 보아너게라는 별명처럼 성격이 불같은 제자였습니다. 공명심이 강하고, 출세욕도 강했습니다. 또한, 제자가 아닌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자 그것을 금했던 것을 보면 제자로서 독점욕도 강한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그가 변화되어 사랑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요한을 요한복음에 나오는 요한과 요한서신에 나오는 요한은 같은 인물이 아니다. 같은 인물일 수 없다. 문체나 태도가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라고 묘사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놓친 사실이 있습니다. 요한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되었습니다. 그래서 초창기의 요한과 후반기의 요한은 같을 수 없습니다.

 

요한의 변화는 두 가지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는 조연에 만족하며 섬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일등 콤플렉스에 시달렸던 사람이었습니다, 뭐든지 남보다 앞서야 하고 직접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도행전 이후에는 요한은 돕는 자로 나타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다가 미문에 앉아 있던 앉은뱅이를 고칠 때도 베드로는 주도적으로 사역했고, 요한은 그를 돕습니다. 요한과 베드로는 기막힌 팀워크를 이루었습니다. 요한은 2인자의 자리에 만족했고, 경쟁심과 독점욕에서 벗어났습니다.

 

비바람을 맞으며 수천 년 세월을 견뎌온 나무는 뿌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깊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작고 보잘것없어도 뿌리는 거목입니다. 요한의 모습이 바로 이러합니다. 겉은 겸손한 조연의 모습이지만, 요한 만큼 깊이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바울이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라고 말한 것처럼, 믿음, 소망 사랑은 하나님 나라의 제일가는 가치입니다. 그런데 요한은 이 믿음에 관한 내용을 요한복음에, ’소망에 대한 내용을 요한 계시록에, ’사랑에 관한 내용을 요한 서신에 담아 기술했습니다. 요한은 그만큼 깊이가 있었던 제자였고, 균형 잡히고 뿌리 깊은 인생이었습니다. “실력은 높게 자세는 낮게라는 신조로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요한은 사랑이 넘치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께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제자였고 그 사랑으로 두려움도 이길 수 있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 군병들이 예수님을 잡으러 오자 제자들은 다 도망쳤습니다. 하지만 제일 먼저 돌아온 제자가 요한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대제사장 앞으로 끌려가실 때 베드로는 멀찍이 따라갔고, 여종이 한패라고 추궁하자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대제사장의 집 뜰까지 따라갔습니다. 끝까지 함께 했습니다. 오직 요한만이 예수님의 십자가 옆에 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는 나오지 않는 예수님의 말씀이 요한복음에만 기록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모친 마리아를 옆에 있던 요한에게 의탁하셨습니다. 십자가상에서 하신 일곱 말씀 가운데 내가 목마르다.”(19:28), “다 이루었다”(30)라는 말씀은 요한만이 들었습니다. 만일 요한이 듣지 않았다면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목마르신지도 몰랐을 것입니다.

 

요한이 예수님 곁을 마지막 순간까지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사랑이었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마지막까지 함께 해줄 사람은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인간의 용기는 믿을 것이 못 됩니다. 용기백배한 사람이라도 절박한 상황에서는 도망가기 바쁩니다. 베드로는 용기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칼을 들고 예수님을 지키기 위해 나서기도 했지만, 그 용기가 끝까지 가지 않았습니다. 다급한 상황이 되자 서둘러 도망쳤습니다. 마지막까지 남는 사람은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만이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요한은 은혜 가운데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편협하고 경쟁심이 강한 사람이 섬기는 사람으로 사랑의 혁명가로 변화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변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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